책소개
여성 인물들이 서로 만나고 사랑하고 헤어지고 아파하는 이야기를 담은 일곱 개의 에피소드입니다. 이야기마다 다른 시간과 장소와 사람이 나오지만 얇게 겹치는 작은 우연이 존재하기도 합니다. 연결점을 이어가면서 하나의 그림을 그려보고 싶었어요.
각 에피소드의 첫 장에는 예고편 같은 그림을 담았습니다. 이야기에 들어가기 전에 그림을 보면서 내용을 짐작할 수도 있고, 다 읽고 난 뒤 다시 그림을 본다면 또 다른 감상을 느낄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하면서요. 부디 그렇게 봐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책 속으로
어느 깊고 어두운 밤에는 제가 쓰는 글이, 만드는 책이 도무지 생산처럼 느껴지지 않아 허무해질 때도 있습니다. 그 허무함마저도 제게는 생산입니다. 쓰지 않고는 가질 수 없는 것일 테니까요. 이 모든 노력에도 불구하고 마침내는 기억에서 전부 사라진다고 해도, 생산과 소멸의 무수한 반복을 지나 결국에는 아무것도 아닌 것에 이르게 된다고 해도, 그것 역시 제게는, 이 세계에서는 생산이었다고 믿고 싶습니다. -책에 대하여 中, p.10
한 사람의 혼잣말 같은 두 사람의 대화였다. 혹은 두 사람이 연주하는 하나의 선율. 어째서 나는 희주와 잘 통한다고 느끼는 걸까. 불협을 느낄만한 작은 구석이 어째서 하나도 없다고 생각하는 걸까. 그러면서도 혹시나 희주가 일방적으로 내게 맞춰주고 있는 거라면, 내가 너무 쉽게 약한 모습을 보인 바람에 짧게나마 날 위로해주는 거라면, 하는 생각이 멈추지 않았다. 이런 희주와도 언젠가는 균열이 생기겠지. 툭하면 우는 나를 이상한 애로 여기겠지. 내 전화를 받지 않겠지. 나를 멀리하다가 정말 멀어지겠지. -「청계호수」 中, p.41
그때는 그런 생각을 하지 못했지만 돌이켜보면 나는 진하와 연애를 한 것 같다. 매일 편지를 쓰고 문자 메시지를 주고받고 통화를 했다. 하굣길에 함께 집까지 걸었고 주말에는 낮부터 만나 영화를 보고 밥을 먹고 차를 마시고 종일 걸었다. 날씨가 화창한 날에는 수업 중에도 진하를 불러내 밖으로 나가는 상상을 멈추지 않았다. 그러다 정말로 자율학습 시간 중에 진하와 몰래 학교를 빠져나와 진하의 손을 잡고 숨이 차게 뛰던 날에는 심장이 터져도 좋을 만큼 행복했다. -「자유시간」 中, p.66
국자 하나를 들고 핏대를 세우며 소리 지른 사람은 의연 언니의 엄마였다. 교회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는 권사 중의 권사. 엄마는 머리를 숙이며 죄송하단 말을 연거푸 내뱉었다. 그때 더 이상 교회에 나오지 않겠다고 했던 결심은 금세 사그라졌다. 의연 언니를 알고부터였다. 의연 언니를 사랑하게 되고 언니도 나를 사랑하고 있다는 걸 알게 되자 다 견딜 수 있었다. 교회는 우리가 유일하게 환한 빛 속에서 만날 수 있는 곳이었다. -「거룩한 사랑」 中, p.112
저자 소개
강민선
문예창작을 전공하고 비정규직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다 도서관 사서가 되었다. 그리고 무엇에 홀린 듯 책을 만들기 시작했다. 2017년에 독립출판물 『백쪽』을 시작으로 『아무도 알려주지 않은 도서관 사서 실무』(2018), 『월요일 휴무』(2018), 『시간의 주름』(2018), 『여름특집』(2018), 『가을특집』(2018), 『나의 비정규 노동담』(2019), 『비행기 모드』(2019), 『외로운 재능』(2019), 『우연의 소설』(2020), 『자책왕』(2020), 『겨울특집』(2020), 『극장칸』(2021), 『하는 사람의 관점』(2022) 등을 쓰고 만들었다. 저자로 참여한 책은 『상호대차』(이후진프레스, 2019), 『도서관의 말들』(유유, 2019), 『아득한 밤에』(유어마인드, 2021), 『끈기의 말들』(유유, 2023)이 있다. 지금은 아무도 모르는 곳에서 조용히 좋아하는 일을 하고 있다.









